덕행편 많은 빈민을 도운 한규(漢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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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971회 작성일 11-05-13 10:21본문
공(公)은 항상 조상의 빛난 얼을 이어받아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면서 한 평생 종사에 몸담아 일해 오시면서도 내외경중(內外輕重)을 분별하고 길흉(吉凶), 소장(消長), 이치(理致)를 소상히 알고 몸소 실천은 물론 일가친척 그리고 이웃마을 청소년들에게까지 이 세상에 태어나 선비가 되어 출세하면 착한 인재를 등용하고 어진이를 천거(薦擧)하여 보국안민(輔國安民)하는 것이 장부(丈夫)가 마땅히 할 일이라고 훈도(訓導)하시었다. 거기에다 가난하여 학업을 계속 못 하는 친척, 혼비(婚費)가 없어 혼인을 못 하는 친척, 장비(葬費)가 없어 장례(葬禮)를 치루지 못하는 친척에게 경비를 지원해 주어서 예를 치르도록 하셨다. 이백(二百)의 일가친척 마을 사람들 애경사(哀慶事)에 빠짐없이 다니시면서 관혼상제례(冠婚喪祭禮)에 맞도록 지도실천(指導實踐)하게 하여 동민(洞民)이나 후손들이 그 공(功)을 기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웃어른들에 대한 예절과 부모님에게 효를 다함은 백행(百行)의 근본이라 하시면서 『효순(孝順)은 환생(還生) 효순자(孝順子)요 오역(忤逆)은 환생(還生) 오역자(忤逆子)니라.』 곧 『부모에 효도하면 효도하는 자식을 낳고 부모에게 거역하고 불효하면 역시 거역하고 불효하는 자식을 낳는다.』고 했다. 누구든지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뜻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면서 매사 솔선수범의 산교육을 하셨습니다. 또 마을에 향약(鄕約)과 같은 향촌(鄕村)의 자치규약(自治規約)으로 도박(賭博)없는 마을, 음주고성방가(飮酒高聲放歌)없는 마을, 인사 잘 하는 마을이란 규약을 만들어 스스로 널리 행할 수 있도록 하여 다른 마을에 귀감(龜鑑)이 되었다. 그리고 모선재(慕先齋) 김선생의 유허비(遺墟碑)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금산향교(金山鄕校) 직원들과 함께 진두지휘(陣頭指揮)하시면서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金泉市 甘川面 道坪里)에 건립하시었다. 공(公)은 六十九세를 일기(一期)로 서기 一九七四년 八월 十六일에 작고하시니 김천시 감천면 용호리 복룡촌 전 지곡종산(金泉市 甘川面 龍虎里 伏龍村 前 池谷宗山) 간좌(艮坐)에 안장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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