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행편 빈민을 도운 인발(仁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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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191회 작성일 11-05-13 08:56본문
공(公)의 자(字)는 인보(仁甫)이시니, 충의공(忠毅公)의 후손(後孫)이신 유현(維賢)공의 아드님으로, 一七一二년 十월 五일에 군위군 봉소리(軍威郡 鳳韶里)에서 출생(出生)하셨다. 정중(鄭重)하신 용모(容貌)에 성품(性品)이 온유(溫柔)하셨다. 집에서는 부모(父母)님께 효성(孝誠)이 극진(極盡)하시고 밖에서는 충신(忠信)으로 사람들을 대(對)하며, 불손한 언사(言辭)는 쓰지 않으셨으므로, 그 공손하고 근검한 행실(行實)은 일반(一般)의 모범(模範)이 되셨다. 일찍이 어떤 일로 멀리 여행(旅行)을 떠나시면서 새 솜옷을 입고 가셨는데, 돌아오실 때에는 헤어진 헌 옷을 입고 오시므로 자부(子婦)께서 이상(異常)히 여기고 그 사연(事緣)을 물었더니, 공(公)께서는 웃으시면서 「여행(旅行) 중 어느 곳에서 어떤 친구(親舊) 한분이 가난한데다 홀아비가 되어 솜옷을 못 입고 떨고 있기에 그 친구(親舊)의 헌 옷과 솜옷을 바꾸어 입었노라.」고 하셨다. 이 밖에 빈민(貧民)을 도와주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다. 그러므로 고을 사람들은 공(公)의 덕행(德行)을 경앙(景仰)하여 마지않았다. 一七九二년 二월 二十八일 향년(享年) 八十세로 별세(別世)하시니,원근간(遠近間)의 선비들은 한 폭(幅)의 만사(輓辭)로 애도(哀悼)의 뜻을 표(表)하기를 「후인(厚人)은 갔도다 길인(吉人)은 죽었도다.」고 하였다. 공(公)의 유해(遺骸)는 신방산(新坊山) 갑좌(甲坐)에 안장(安葬)되셨고 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의 증직(贈職)을 받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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