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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행편 실덕(實德)이 전하는 시우(時禹)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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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266회 작성일 11-05-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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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實力)이 전하는 시우(時禹)공 묘

소재지 : 진주시 미천면 향양리


공의 휘(諱)는 시우(時禹)이고 군자감정 명건(命健)공의 아드님이다. 통정대부 공조참의를 증직 받았고 묘는 진주시 미천면 향양리에 있다.


묘갈명(墓碣銘)

지난날 통정대부 공조참의(通政大夫工曹參議)로 증직(贈職)된 김공(金公) 시우(時禹)의 자(字)는 내문(乃文)이며 본관은 김녕(金寧)이니 신라 태보(太輔) 알지(閼智)의 후예이다.

조선 단종(端宗)조에 판서(判書)였던 백촌(白村)선생 휘 문기(文起)의 구세손(九世孫)으로 조부(祖父)는 매형(梅亨)이요 고(考∥부친)는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증직된 명건(命健)이다. 비(妣∥모친)는 숙인(淑人) 일선 김씨(一善金氏) 기원(基元)의 따님이며 배(配∥부인)는 숙부인(淑夫人)으로 청송(靑松) 심봉규(沈鳳圭)의 따님이다.

계윤(戒玧)과 태윤(泰玧)은 함께 통덕랑(通德郞)이었고 대윤(大玧)은 공조참의(工曹參議)였으니 이상은 세분 아들들이다.

일방(一房∥장남)의 손(孫)은 맹수(孟壽)와 맹인(孟仁)이요 이방(二房∥차남)의 손(孫)은 일원(鎰源)이며 삼방(三房)의 손(孫)은 일손(鎰孫)과 일민(鎰敏) 일준(鎰俊) 일성(鎰誠)인데 일성(鎰誠)은 수(壽)로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이르렀으며 공(公)은 이 일성(鎰誠)공의 귀(貴)로 인해 증직(贈職)이 된 것이다.

숙종(肅宗) 계사(癸巳一七一三)년에 출생하고 영종(英宗) 을미(乙未一七七五)년 五월 二十六일 졸(卒)하니 묘(墓)는 진주(晋州) 미천면(美川面) 장죽리(長竹里) 부주등(浮舟嶝) 신좌(辛坐)원이다.

공(公)의 육세손(六世孫) 호권(祜權)이 그 종족(宗族∥일가)들과 도모한 끝에 장차 묘(墓) 앞에 비석을 세우기

위해 그 세계(世系)를 서술(敍述)하고 자손(子孫)들이 나 이교우(李敎宇)를 찾아와 비명(碑銘)을 청하면서 이르기를 부군 시우(府君 時禹)께서는 실덕(實德)이 있으셨으나 집안에 사필(史筆)로 전해온 기록이 없다고 했다. 또 말하기를 비문(碑文)의 내용이 특별히 밝힐만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가지고 비명(碑銘)의 자료를 삼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나(이교우)는 말하기를 불명(不明)이라고 말한 것은 선(善 )한 일이 있으나 그 기록이 없다는 말이다. 곧 그 불명(不明)이라고 하는 말 가운데에는 공(公)의 유선(有善)함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기왕에 선행(善行)이 있다면 하늘이 알고 신(神)이 알 것이니 사람이 알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어찌 족히 허물할 것이 있으랴! 또 군(君)은 학문을 갖추었으니 진실로 어렴풋이나마 근거만 가지고 있다면 알기 쉽게 자세히 늘어놓으며 설명하려고 하면 되는 것인데 어찌 능히 하지 못함을 걱정하겠는가? 그리고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실지의 본심인 것이다.

공(公)이 실지로 덕(德)이 있고 군(君)이 진실한 마음이 있어서 계승하였으니 가위 어진 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세상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이 군(君)을 본다면 어찌 부끄럽지 아니 하겠는가 이에 족히 써 자료를 삼아 명(銘)을 하노니 명(銘)하여 이르되, 사치는 순박하고 안함을 숭상하며 화려한 무식은 너무 과한 것이니 기만을 더함이 없고 오직 사실대로 적당하게 해야 하네.

공(公)은 실덕(實德)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감추기를 달갑게 여겼으니 하늘과 신(神)은 밝게 알지만 사람들은 어둡고 캄캄하네.

천년 이후에 아는 이는 알게 될 것이니 나는 명(銘)을 하여 밑천으로 남기며 높이 걸고 때만 기다리리라.

을유(乙酉一九四五)년 동짓달 임신(壬申)일
전의(全義) 이교우(李敎宇) 지음
七세손 형생(炯生) 형덕(炯德) 세움


墓碣銘並序

故贈通政大夫工曹參議金公諱時禹字乃文系出金寧新羅太輔閼智後我端廟朝判書白村先生文起九世孫祖諱梅亨考贈軍資監正諱命健妣贈淑人一善金氏基元女配贈淑夫人靑松沈鳳圭女曰戒玧曰泰玧俱通德郞曰大玧贈工參三南也一房孫孟壽孟仁二房孫鎰源三房孫鎰孫鎰敏俊鎰誠壽崇政公 贈以此公以肅癸巳生英宗乙未五月二十六日卒墓在晋州美川面長竹里浮舟嶝辛原公六世孫祜權謀宗族將立石墓前叙其世系子孫來不侫乞銘曰府君有實德而家無史傳又設曰碑不明甚矣何以資銘不侫曰不明云者有善而莫記之謂於卽謂不明公之有善可知旣有善則天知之神知之人知與否何足爲有无且君有文苟○據依稀者以敷演何患不能而知曰知无曰无實心也公有實德君有實心以継之可謂肖裔世之不然者視君无愧乎此資銘也銘曰侈尙樸散文爲甚欺无增有惟適任公有實德自甘晦天神昭昭人昩千歲在後知者知我銘有者掲俟時

乙酉至月壬申 全義 李敎宇 撰
丙戌四月 七世孫 炯生 炯德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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