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편 원정공(元靖公) 휘 향(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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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458회 작성일 10-01-11 10:54본문
원정공(元靖公) 고려사(高麗史) 기록 원정공 휘 향(珦)의 고려사 열전편(列傳篇) 기록이다.
공(公)은 중시조(中始祖) 경순왕(敬順王)의 六세손 수성백(隋城佰) 휘 품언(稟言)의 아드님으로 자(字)가 부민(富民)이시다. 공은 청렴(淸廉)하시고 근면(勤勉)하시더니 일찍이 관가(官家)로 나아가 예종(睿宗)때부터 왕(王)을 측근에서 모시는 내관(內官)을 시작으로 경원군사(慶源郡使)로서 많은 치적(治積)을 쌓고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다가 인종(仁宗) 四년(一一二六)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가 되시었다.
그 해 五월에는 왕의 밀지(密旨)를 받으시고 척준경(拓俊京) 최사전(崔思全) 등과 이자겸(李資謙)의 난(亂)을 평정하였다. 본래 이자겸이 둘째 아들 이지보(李之甫)가 공의 사위었으나 인척(姻戚)에 구애(拘碍)됨이 없는 충(忠)이시었다. 큰 공(功)을 세우시고도 이를 말하지 않으시니 왕이 크게 칭찬하시고, 위사공신(衛社功臣)으로 봉(封)하셨다. 이 때 봉군(封君)이나 봉작(封爵)이 있었을 것이나 그 군호(君號)나 작호(爵號)가 전하지 않으니 유감(遺憾)이다.
이 해 六월에 검교사도 호부상서 지문하성사(檢校使徒戶部尙書知門下省事)에 오르고, 十二월에는 병부상서(兵部尙書)가 되었으며, 이듬해 六월에는 검교태위 수사공 문하시랑 동중서시랑 평장사(檢校太尉守司空門下侍郞同中書侍郞平章事)로서 치사(致仕)하셨다.
공께서 사직원을 내시어도 왕께서는 『어려울 때 근심을 같이하고, 몸을 던져 간신(姦臣)을 제거(除去)하였으니, 영화(榮華)도 같이 누릴 것 인대, 왕이 공을 대우하고 싶은 뜻을 몰라주느냐?』하시면서 사표(辭表)를 다섯 번이나 반려(返戾)하시었다고 한다.
공께서는 위사공신(偉社功臣)으로서 봉작(封爵)되셨음이 틀림없는 바, 고려사 열인전(高麗史列人傳)에 공을 안동부인(安東府人)이라 기록하고,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에는 공을 김녕파(金寧派)의 파조(派祖)라 기록하였으니 공이 안동(安東) 또는 금주(金州)의 봉작(封爵)을 받으신 것으로 추즉된다. 또 공을 관조(貫祖) 휘 시흥(時興)의 아드님으로 한 기록이 있으나, 이는 연대(年代)로 보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종(仁宗) 十三년(一一三五) 二월에 흰 무지개가 해를 뚫더니 얼마 안 되어 경인일(庚寅日)에 돌아가시니 왕은 그 장의(葬儀)를 고려사 열전의 원정공 기사에 의하면 공무를 중지하고 조의를 표하는 철조(輟朝 : 국민장)로 치르게 하시고, 시호(諡號)를 원정(元靖)이라 내리었다. 익산(益山) 오강서원에 모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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